밥이 젤 중요하신 아버지
안녕하세요. 30대 초반 여자입니다.가부장적인 아버지에 대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저희 아버지는 설거지, 빨래, 청소기, 요리 등 기본적인 집안일을 거의 하지 않으시고, 하시는걸 본게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밥 먹는걸 굉장히 중요시하시는 분인데, 몇가지 밑반찬과 국이나 찌개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며, 이 모든걸 항상 어머니가 챙겨드려야 만족해하시는 분입니다. 맞벌이 부부임에도 이 모든걸 어머니의 일이라 당연히 생각하십니다.
며칠 전 일입니다.어머니는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직장으로부터 2주간 휴가를 받으셨고, 매일 야근과 주말출근에 치여 지내시다가 간만에 받은 휴가로 집에서 쉬고 계셨습니다.평소와 같이 휴가 중에도 몇가지 밑반찬과 호박전, 사골 등을 해놓으셨구요.그런데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오셔서는 일주일 쉬면서 밥한끼 제대로 줘봤냐, 양심이 없다. 어머니께 큰소리를 내시더라구요.속상한 마음에 제가 고민하다 아버지께 카톡으로 아래와 같이 보냈습니다.
**사랑하는 아빠!!엄마 휴가인데 여기저기 아파서 병원 다녀왔다고 하더라고.그래도 휴가라고 밑반찬이랑 호박전도 준비해놨는데 찌개 안끓여놨다고 술먹고 와서 집안분위기 삭막하게 만들면 얼마나 서운할까. 나라면 엄청나게 서운하고 화가 났을 것 같아.밑반찬 몇개 해놓는 것도 엄마의 당연한 일이 아닌 것이고, 국 끓이는게 엄마의 일도 아닌거야.똑같이 사회생활 하면서 가족을 위해서 집안일을 도와주는거지 엄마의 일이 아니잖아.
나는 사실 아빠가 밥과 관련해서 느끼는 그 서운함들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어.도대체 찌개가 무엇이고, 밥을 제때 누가 차리는게 왜 중요한 것이고, 그 서운함의 강도가 얼마이길래. 매번 밥으로 분쟁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 분쟁이 일어날때마다 서로 눈치아닌 눈치를 봐야하는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잖아.
찌개가 먹고 싶으면 “여보 오늘 무슨 찌개가 먹고 싶은데 부탁해도 될까”라고 얘기하면 엄마가 안끓여줄 사람도 아니고, 밥 때가 지났으면 집에 반찬들 꺼내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오늘 내가 한 이야기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않길 바랄게!!
맞벌이하니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가면서 지냈으면 좋겠어.설사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맨정신에 기분나쁘지 않게 서로 대화로 풀었으면 좋겠고..우리도 아빠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테니 아빠도 가족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줬으면 좋겠어.우리도 늘 아빠 편에 있을테니, 아빠도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이제 나이도 있으니 술이랑 담배 좀 조절해서 건강관리 잘하고. 운전 조심하고.**
그랬더니 바로 어머니께 전화해서 도대체 뭐라고 했길래 딸이 카톡을 그렇게 보냈냐고, 본인이 뭘 잘못했길래 저런 소리를 들어야 하냐고. 일주일 놀면서 뭐했냐고. 내가 틀린말 했냐. 본인이 딸이랑 싸우길 바라냐고. 지겹다고. 큰소리 내셨더라구요.퇴근 후에 할얘기가 있다며 어머니를 방으로 따로 부르셨고, 그동안 나도 서운한게 많다. 본인만 집안에서 소외되는 게 서운했다. 쉬면서 찌개 한번을 안끓여주지 않았느냐. 밥하는게 그렇게 싫으면 얘기해라. 그럼 용돈받아 쓰지 않고 카드 막 쓰겠다. 밥은 혼자 못먹으니 사람들과 같이 먹으면 돈 좀 나올거다. 그것도 싫으면 나가겠다.
이게 정상적인 사고방식인지 정말 궁금하네요.직장에서 주는 휴가인데, 왜 그걸 본인을 위해 밥해주는 휴가라고 생각하는 것인지.자꾸 집에서 소외당한다느니 그런걸로 이 문제들을 무마시키려고 하는게 참 안타깝습니다.오늘만의 일이 아니고, 늘 자라오면서 느꼈던 것들이라 고치고 고쳐서 조심스럽게 말씀드린건데, 이런식으로 받아들이니 정말 힘이 빠지네요. 늘 그래왔듯이 이렇게 또 큰소리내고 가족들 눈치보게 만들다가 분위기가 잠잠해지면 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죠.
자라오면서 이렇게 밥문제, 그리고 집안에서 피우는 담배(평생을 밖에 나가 피우는 담배는 귀찮다며 집에서 담배를 피우셨고, 요즘은 본인 방에서만 피우시는 걸로 혼자 합의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방에서 핀다고 하더라도 온 집안에 냄새가 퍼지지 않습니까)때문에 수없이 다퉈왔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한게 없네요.저는 이제 곧 결혼을 앞두고 있어 다음주에 아버지 혼주양복 맞추러 갈 예정이었는데, 이번 일로 저한테 화가 나셔서 그마저도 가지 않겠다고 하시네요. 가슴이 답답합니다.
주변에 이런 경험들 있으신가요?아버지 저한테는 한마디도 안하시고, 어머니만 달달 볶아대서 더 속상하네요.속상한 마음에 글 올려봅니다. 그리고 조언주시면 정리해서 아버지께 전달 드리려고 하니 의견 부탁드립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