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 태어났더라면
엄도준이 혐오 가득한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을 바라본다.
‘이놈의 손가락이 없었더라면 이 늦은 시간에 떡튀순 세트를 입에 넣지 않았을 거야.’
엄도준은 자신의 검지가 미웠다. 3cm마다 칼집 낸 가래떡을 마디당 5도씩 구부려 놓은 듯한 손가락. 다른 아홉 개 손가락도 퉁퉁하고 무뎌 보이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 오른손 검지 녀석은 좀 달랐다. 엄도준의 배에 조금이라도 허기가 느껴지면, 그렇게 민첩하게 배달 앱을 열어 그 많은 먹거리를 위아래로 쓱쓱 넘긴 후 순식간에 [결제하기] 버튼을 눌러댔다.
‘이놈의 손가락을 잘라야겠어.’
짜증이 솟구쳤지만, 야식을 피하기 위해 살찌지 않기 위해 손가락을 절단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손가락 10개를 다 자른다 해도, 음성으로 앱 기능을 실행하는 시대 아니던가.
그렇다. 손가락을 탓할 순 없었다. 엄도준은 이제 ㅋ팡이츠, ㅂ민을 탓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을 탓하고, 그 스마트폰을 만든 스티브 잡스란 작자를 탓했다. 결국엔 더 나아가, 손가락 터치 한 번으로 모든 게 가능해진 이 시대를 탓했다.
인간은 원래 그렇다. 나를 탓하면 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쓰라리므로 남을 탓한다. 그리고 탓할 남도 없다면 동물을, 사물을, 심지어 무형의 개념까지 탓한다. 그게 인간이다.
엄도준은 떡튀순 폭식으로 더 불뚝 튀어나온 듯한 배를 깔고 잠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는다. 꺼억… 식도에서 올라오는 역한 튀김 기름 맛에 더욱 화가 치민다.
‘치킨집과 중국집만 배달하던 때엔 이렇게 야식을 많이 먹진 않았다고! 이렇게 뚱뚱하진 않았다고! 짜장, 치킨에 질려서 그냥 안 먹고 잘 때도 있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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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 탓이 아니야. 순간의 편리함만 추구하는 21세기 탓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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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이렇게 뚱뚱하진 않았을 거야.’
눈물이 엄도준의 기름진 콧잔등과 퉁퉁한 볼을 내려와 베개를 적셨다.
‘100년 전에만 태어났더라면... 100년 전에만...’
(흑흑흑......)
(흑흑......)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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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애 응애~
“어머 엄 씨네 다섯 째가 태어났나 벼.”
“사내놈이래.”
“사내놈이건 계집이건, 입 하나 덜어도 모자란 때에 이게 웬 말이래... 쯧쯧”
엄도준은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에 누추한 벽과 짚으로 엮은 천장이 들어왔다. ‘여긴 어디지…?’ 축축하고 비릿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던 바로 그 순간, 엄도준의 입에 뭔가가 들어왔다. 방금 해산한 여자의 젖이었다. 갓난아기 엄도준은 본능에 따라 있는 힘껏 빨았지만, 산모의 것이라기엔 볼품없이 홀쭉한 젖에선 아무것도 나오질 않았다.
때는 1922년 5월 10일. 보릿고개가 한창인 일제강점기다. 가뜩이나 궁핍하던 농민을 일제가 잔인하게 수탈하던 시대. 보리를 수확하는 초여름까지는 먹을 게 없어,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뜯어먹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마저 풀때기도 없으면, 흙이라도 파먹어야 했다.
그렇다. 신이 엄도준의 소원을 들어준 것이다. 자면서도 21세기를 탓하던 엄도준의 슬픔과 원망이 하늘에 닿았던 것이다. 불쌍해서였을까, 볼썽사나워서였을까. 신은 엄도준이 그렇게 빌던 대로 100년 전 오늘 다시 태어나게 해줬다.
며칠 뒤, 엄도준은 잠에서 깬다.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따가운 햇볕이 오른쪽 뺨에 내리쬔다. 어미의 등에 메인 포대기 안이다. 몸을 구부린 어미의 앙상한 등이 자꾸만 움직인다. 가죽밖에 안 남은 등에 툭 튀어나온 척추가 엄도준의 왼쪽 광대에 부딪혀 아프다. 배가 고프다. 엄지를 입에 넣고 쪽쪽 빨아 본다.
옆에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 흙밭에 무릎을 꿇고 뭔가를 열심히 판다. 볼품없이 가늘고 기다란, 마치 너무 바싹 구워버린 오징어 다리를 여러 가닥 붙여놓은 듯한 손으로.
“요 허연 진흙이 쓰질 않어.“
“좁쌀 가루에 섞어서 떡으로 쑤면 단 맛도 나는 듯하구... 먹을 만 하더라구.”
그들은 쉴 새 없이 손가락을 움직여댔다. 그 주름지고 앙상한 검지를 갈고리처럼 바삐 움직여가며, 허여멀건 점토를 흙구덩이에서 열심히 골라 파냈다.
“에구, 언제 밥 같은 밥을 먹어보려나.”
“다 그 일본 놈들 탓이야. 1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응애애애애~!!!!!!! 왱애애애애애애애~!!!!!!
“야가 왜 갑자기 우는겨.”
“배가 고픈 게지. 에미가 먹질 못허는디 젖이 나오겄어?”
“그래서 손꾸락을 저리도 열심히 빠는가벼. 그랴도 갓난쟁이라고 손꾸락이 오통통한 게 귀엽네 그려.”
“참 불쌍도 혀. 얼마나 버틸랑가 몰러. 왜 하필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1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응애애애~!!!!!!! 앵앵애애애!!!!!
‘아니야, 아니야! 그런 소원 따위 빌지마. 그런 무서운 소린 입에도 올리면 안 된다고!‘ 엄도준은 크게 소리쳤지만, 갓난아기 입에서 나오는 건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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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부에서 괴질이 유행해 벌써 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급체한 후 토사를 앓다가 죽어나갔습니다. 어떤 약초도 소용이 없고, 그저 주검을 성 밖으로 끌어내 파묻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할 도리 없는 목전의 참황에 무력할 뿐입니다.’ [1822년 전후, 평안감사 김이교가 조정에 올린 보고서]
무서운 역병이 1822년 조선 팔도를 초토화했다. 괴질의 이름은 콜레라.
사람들은 먹는 대로 쌌다. 그리고 싸는 대로 죽어나갔다.
평양성 밖에 시신이 산처럼 쌓여 있다. 그 시체더미 한 귀퉁이에서 삐죽 나와 늘어져 있는 손 하나가 눈에 띈다. 양반집 자식이었는지 뭔지, 잘 먹어 살이 통통하게 오른 손가락이 붙어 있다.